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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좌담 [해외 큰 손 그 베일을 벗긴다]

송무학수 2007. 1. 16. 13:53

"자본 상륙 속도조절로 토종 보호해야"
"공정경쟁 룰 속히 마련…경제정책 일관성 유지를"

먹이가 있는 곳에 맹수가 모이게 마련이다. 먹이(투자처)를 찾는 데 혈안인세계 거대 자본들이 한국 시장을 놓칠 리 없다. 외환위기의 혼란 속에 밀물처럼 들어온 해외 자본의 거센 물결은 이 시간에도 멈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돈에는 꼬리표가 없다. 특히 국가 경제의 혈맥인 금융산업에서 단기펀드와 금융자본의 진입 속도는 다른 부문보다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 이들 해외 자본은 선진 금융기법의 전도사란 긍정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가려진 베일 속에 순수성에 대한 의구심을 끊임없이 받아 왔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보다는 철저한 머니게임에만 몰두한다는 비판도 수없이 받아온 터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 본지는 국내 언론사 중 처음으로 한국 시장에 진출한 펀드와 투자은행 등의 실체를 집중 분석한'해외 큰손, 그 베일을 벗긴다'는 시리즈를 총 11회에 걸쳐 연재했다.

본지는 시리즈를 마감하면서 학계, 금융계 전문가들을 초청해 해외 자본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자본의 세계화라는 흐름에 동참하면서 국가 이익을 취할 수 있는 혜안을 그들에게 들어봤다. 참석자들은 해외 자본에 대한 경계심을 표하면서 금융시장의 민영화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 시간에 국내 금융 시스템의 질적 성장을 꾀하고 외국 자본에 버금가는 국내 자본의 육성도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내외 자본 모두 공정한 게임을 펼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에 대한 중요성도 언급됐다.

본지 권충원 정경부장의 사회로 하성근 연세대 상경대학장 겸 경제대학원장, 전광우 우리금융 부회장, 함정호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장이 토론자로 참석해 다양한 논의를 펼쳤다.

-사회자 =외국 자본이 밀물처럼 거세게들어오고 있습니다. 세계화 흐름에 동참하면서도 국수적이지 않는 입장을 취해야 하는 어려운 시점입니다. 우선 외국 자본진출 배경에 대해 한 말씀씩 주시죠.

▲함정호 원장=크게 보면 선진국들의 경우 80년대 이후 대형 펀드들의 자본이 넘쳐났습니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금융 구조조정에 상당히 성공한 것으로평가받았죠. 경제 기초여건(펀더멘털)이좋았고, 수익과 전망도 좋았고 지금도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인 배경이 된 것이죠. 통계적으로 보면 남미 국가는 최고 80%까지, 선진국은 20%가량 외국 자본이 들어와 있습니다. 한국은 30%선으로 선진국과 비교해 아직 높은 수준이 아닙니다.
▲하성근 학장=외국자본진출에대해정부가 상당한 유인책을 제시한 것이 사실이죠. 다른 나라에는 없던 유인책을 베푸는 데 자본이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외국투자가들도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실물자산이나 금융자산이 저평가돼 있다는 점을 직시하고 있었던 거죠. 그런 가운데 국내시장이 외국 자본의 포트폴리오 자본투자에 포함된 것입니다.
▲전광우 부회장=크게 몇 가지로 말할 수있습니다. 자본이동의 자유화라는 세계적인 추세 속에 우리나라가 금융시장 개방정책을 펼쳐 왔습니다. 또한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 구조조정 성과가 가시화되면서 외국 자본 유입속도가 빨라졌죠. 시각이 엇갈릴 수 있지만 외국 자본의 경우 한국 경제와 금융산업에 대해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전망을 가지고 뛰어들었습니다.최근에는 원화절상 기대에 따른 투자도 제법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회자 =물론외환위기이후의개방정책과 거시적인 경제 전망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금융 시스템과 금융 감독이 미흡한 데서 오는 투기적 요인도 있지 않습니까. 일부 해외 펀드의 경우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유로 이머징국가(신흥시장국가)에만 투자하기도 합니다.
▲하 학장=그런 측면도 배제하긴 어렵습니다. 그런 투자가들이 허술한 점을 노리고 들어오지만 위험도 따릅니다. 아마 여러 투자요인 중 하나는 되겠지만 주된 요인은 아닐 것입니다.
▲전 부회장=국내자본시장기반이취약한 것은 사실입니다. 시장의 주요 참여자로 들어오는 외국계 대형 펀드들이 국내시장의 왜곡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함 원장=그렇습니다. 제도를 선진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허술한 점도 많죠. 또 외국 자본에 비해 국내 금융기관에만 적용되는 규제도 많습니다. 사실 외국 자본들이 모르고 들어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회자 =외환위기 당시 썰물처럼 자본이 빠져 나갈 때에 비하면 외국 자본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선 사실 행복한 고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 자본, 특히 금융자본에 대해선 빛과 그림자가 있습니다.
▲전 부회장=원칙적으로 해외 자본의 국내 유입은 환영할 일이죠. 외국 자본을 단기투자자본과 생산활동에 연관된 직접투자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문제는 단기투자펀드입니다. 단기투자도 시장 활성화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는 있지만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빠지면서 시장을 교란시킬 수 있기 때문이죠. 해외직접투자가 국내 생산활동과 경제성장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하 학장=우리나라는 북핵문제나 노사문제 등 경제 외적인 불안이 많죠. 이런 가운데 외자유치는 활발하게 하는 정책적인 방향은 유지돼야 합니다. 하지만 지나치면 탈이 생기는 법입니다. 포트폴리오 투자가 그렇습니다. 현재로선 포트폴리오투자가 단기간에 집중돼 우리가 수용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이뤄지고 있어 이것이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기관투자가 역할이 제대로 뒷받침되고 있지 않아 아주 불안합니다. 단기투자펀드의 경우 우리나라의 이익을 고려하길 기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배치되는 경우가 많기때문이죠. 적절한 수준의 속도 조절이 필요합니다. 특히 경제주권을 잃고 경제정책을 펴기가 어렵습니다. 펀드의 속성(아이덴티티)을 파악하기도 어렵습니다. 외환은행에 투자한 론스타펀드의 실체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함 원장=금융 부문에 초점을 맞춰 보죠. 새로운 금융기법 전수, 선의의 경쟁을 통한 은행 시스템 효율 제고, 감독체제 등 선진 노하우 습득, 국내 자본의 해외 진출유리 등의 이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금융 위축과 통화정책의 어려움 등도 무시할 수 없죠. 외국 자본의 경우 수익성 추구를 위해 신용이 높은 기업에만 주로 대출할 것입니다. 통계를 보면 외국계 은행들은 98년 기업대출이 83%에 달했지만 이후 국내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지난해 9월 말 49.6%로 33%포인트 이상 기업대출이 줄었습니다. 같은 기간 국내 은행의 기업대출이 24%줄어든 것과 대조적이죠. 통화정책이나 정책사안에 대한 협조에 미온적인 것도 문제입니다. LG카드 지원에 대해 한미, 외환은행등외국자본이 대주주인 은행의 비협조가 단적인 예죠. 국부 유출과 국내 신규 자본 진입이 어렵다는 점도 그림자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전 부회장=해외 자본의 금융산업 진출은국내금융시스템의선진화기여등장점이 있습니다. 투명하고 책임 있는 경영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기여한다는 말이죠. 외국 자본이 대주주인 개별은행의 경
우 주주 이익을 위해서는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만 금융시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공평한 부담을 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경제환경이나 금융시장이 혼란할 때 빠져 나가면 시장 혼란을 가중시킬수 있습니다. 당연히 시장 안정을 위한 정부정책의 실효성이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금융권에 투자된 외국 자본이 단기펀드 위주이다 보니 금융기관의 장기수익모델보다는 단기이익 쪽에 초점을 맞춘것입니다.
-사회자 =단점이 있지만 해외 자본을 내보낼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세계화라는 도도한 흐름을 해치지 않으면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함 원장=외환위기당시해외자본이밀려 올 때는 정신이 없어 빛만 보고 그림자는 못 봤습니다. 금융시장 선진화 등의 장점도 최대한 누리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지적됐듯이 이런 분위기라면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 금융자본의 성장 등을 보면서 천천히 하자는 말입니다. 연기금 등을 중심으로 국내 기관투자가를 육성하거나 국내 사모투자펀드를 키우는 것도 가능합니다. 금융 시스템의 질적 성장을 한 단계 높여 가는 것은 물론입니다. 공적자금 회수 등에 집착하지 않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해외 단기펀드 말고 기업금융의 노하우가 탁월한 곳에 매각을 주선하는 게 방법일 수 있습니다. 펀드에 매각할 수밖에없다면 여러가지 제도적 장치를 도입해 단기에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재매각 등 전략적인 의사결정을 할 때는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장치인 '황금주'도생각해볼수있습니다.
▲하 학장=해외 자본 진출에 따른 단점은 금융자본의 세계화라는 흐름 속에 마찰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일단 우리나라의 경제 구조조정을 세계화 체계에 맞춰 나가야 합니다. 금융 부문도 가능한 한 규제를 줄이고, 국내 자본도 얼마든지 외국에 나가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단기적인 대책을 세우라면 개방 속도를 늦추자는 것입니다. 금융기관의 매각시기나 속도를 줄이는 방안도 검토할 수있다는 말입니다.
▲전 부회장=소규모 개방경제 시스템을 가진 우리나라는 개방경제 체제 강화와 동북아 금융허브를 구축한다는 장기과제 등을 고려하며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해외 투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합니다. 단기펀드의빈번한 유출입과 시장 교란을 줄이려면 경제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하죠. 외국 투자가들이 위험(리스크)을 부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국내 금융분야의 한 단계 높은 질적 성장이 중요합니다. 소화능력이 높아야 먹은 음식들이 피와 살이 되지 않겠습니까. 외국 대규모 펀드에 대해 균형을 맞추려면 국내 기관투자가를적극 육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외국 투자자본이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수 있는부정적 효과를 줄일 수 있습니다.
-사회자=그럼 눈앞의 문제를 살펴 보죠. 우리금융지주의 정부 지분 매각이나 시티은행의 한미은행 인수작업 등 금융 현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전 부회장=우리금융지주의 정부 지분매각은 민영화 촉진과 공적자금 회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투자자 범위를 최대한 확대시켜 국내외 투자자 모두에게 개방돼야할 겁니다. 이를 위해선 제도적으로 국내사모펀드, 산업자본이 참여한 컨소시엄 등 국내 투자자본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줘야 합니다. 국내외 가리지 말고 공평하게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이는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은행 소유구조를 가져오는 데 기여함은 물론, 한국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해 보입니다. 시티은행의 한미은행 인수가 실현된다면 단기펀드가 아니라 실제 금융업을 영위하는 금융자본이 들어오는 최초의 케이스라는 데 의미가 큽니다. 국내 경제와 금융
산업에 대해 장기적으로 우호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될 수도 있겠습니다. 또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 추진에도 국제금융 커뮤니티와의 연계 강화라는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국내 금융기관의 경쟁은 심화될 것입니다. 현재 국내에 12개 지점망을 가진 시티은행이 225개 지점망을 갖춘 한미은행을 인수해소매금융을 강화하면 다른 금융기관에는 상당히큰위협입니다. 시티은행이 한미은행을 인수해 국내 시장에 본격 진출하는 것은 크게 보면 현 은행산업 판도 변화의 신호탄일 수 있습니다. '국민-우리-신한-하나'의 4강체제가 깨질 수 있습니다. 시티은행이 추가적인 인수ㆍ합병을 한다면 국내 은행의 지각 변동은 불가피해 폐쇄적이거나 수동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됩니다. 전향적으로대처해 생산성 향상, 비용 효율성 제고 등 국내 은행의 경영혁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함 원 =어느 정도 속도 조절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이 아닙니다. 속도도 좋지만 민영화의 질도 중요합니다. 지금은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진출문제는 물론 사모펀드 조성에 관한 논의
도 제대로 안 됐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밑그림을 가지고 차분하게 진행해 가야 합니다. 민영화 속도 조절하며 국내 자본을 육성해 나가는 것이 장기적인 은행산업발전을 위해서도 좋습니다. 또 외국 자본의 국적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진출국의 경제 상황이 악화돼 자본을 한꺼번에 회수할 경우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외환위기 당시 일본계 은행들이 아시아 기업의 대출금을 서둘러 회수하는 바람에 해당국의 금융위기가 가중된 경우가 있습니다. 외국 자본의 국적이 지역적으로 분산돼 있다면 진출국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더라도 진입국 은행산업이나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골고루 분산될 것입니다.
▲하 학장=양복윗도리를입고짚신을신고 가면 우습지 않습니까. 해외 자본 진출에 대해 건수로 대응하지 말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노사개혁이나 민영화 문제 등을 큰 틀에서 파악해야 합
니다. 하다못해 외국 투자가들에게 민영화에 대한 로드맵을 보여 줘야 하죠. 지금은 숨이 차서 어렵겠지만 민영화를 반드시 한다는 신념을 심어 줘야 할 것입니다.민영화는 지배구조의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투명경영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능하다면 시간을 두고 좀더 고민하면서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가야 할것입니다.
▲전 부회장=사실 소유구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배구조입니다. 현재 여건하에서 민영화의 속도를 조절하자는 것도 설득력은 있지만 그 과정에서도 지배구조의 개선노력은 철저히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사회자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전창협ㆍ권남근 기자(jljj@heraldm. 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