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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금융시스템,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송무학수 2007. 1. 16. 13:43

요즈음 돈이 잘 돌지 않는다는데 그렇게 많이 풀린 돈은 대체 어디로 갔는가? 모두들 바캉스를 떠났는가? 돈이 빨리 생산과 소비현장에 복귀하지 않아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진다고 걱정들이 태산이다.

최근 일각에서는 우리 경제가 일본식 장기불황을 닮아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지만 급격한 자산거품 붕괴로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과는 현재의 경기침체 원인이나 전개과정이 전혀 다르다. 문제는 오랫동안 낮은 금리 하에서 유동성이 많이 풀렸지만 돈이 생산적인 부문으로 흐르지 않고 은행부문의 안전자산에만 몰려 있다는 데 있다. 금융중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돈이 투자, 생산, 소비의 선순환구조로 흐르지 못하고 한 곳에 머물고 있어서는 빠른 경제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외환위기 이후 금융구조 조정을 거치면서 금융시스템 재정립에 관한 충분한 논의와 로드맵이 부재한 상태에서 금융시스템의 중심을 시장중심구조로 너무 급격하게 전환하였다. 이는 외환위기의 원인이 당시 은행중심이었던 우리 금융시스템의 잘못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특히 정부는 1999년을 ‘자본시장 육성의 해’로 정해 기업들이 직접금융을 주된 자금조달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자본시장 육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우리의 금융시스템은 한 동안 시장중심시스템으로 전환되는 모습을 보였으나 신용평가회사, 외부감사기관, 기업회계 투명성 확보 등 정작 시장중심시스템 발전을 위해 필요한 하부구조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해 2000년 이후 오히려 처음보다 더 불리한 어정쩡한 은행중심시스템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이에 따른 후유증은 너무도 크다. 우리가 그토록 갈망했던 자본시장은 현재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중소기업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업들은 자본시장으로부터 자금을 거의 조달할 수 없는 지경이다. 금융구조를 시장중심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공개정보에 주로 의존하는 시장거래방식이 중시되면서 은행은 은행대로 단기 수익성과 주주 이익을 우선하는 업무행태를 보이고 있다. 국채나 통안증권 등 안전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담보 및 보증부 대출인 주택자금과 가계대출을 확대한 반면 전통적인 기업신용대출은 크게 줄였다. 또한 국가경제의 혈맥인 금융산업에 기업금융 노하우가 탁월한 외국 금융자본대신 해외 투기펀드가 마구 진입한 것도 문제다. 이제 와서 외국 투기자본에 대항하는 토종자본이니 대항마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이제라도 늦지는 않았다. 동북아 금융허브를 추진하고자 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금융산업이 한 단계 더 선진화되고 국제경쟁력이 있는 전략산업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면 금융산업 발전방향에 대한 논의를 이제라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금융시스템 성과에 대한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효율적 자금배분과 경제발전을 위해서 특정 금융시스템이 보다 우월하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구조조정과 자본배분 효율성의 향상이 시급하며 실물경제 측면에서도 경쟁과 혁신에 의한 성장이 요구되고 있다는 점에서 자본시장의 발전이 긴요하다. 또한 1990년대 이후 세계화와 금융시장의 통합이 진전되면서 시장중심 금융시스템이 세계 금융시장의 국제표준이 되고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 금융시스템은 앞으로 은행과 시장의 균형 발전을 도모해 나가야 한다. 먼저 은행의 기능을 정상화함으로써 은행부문의 발전을 거쳐 점진적으로 시장중심으로 발전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은행이 기업뿐만 아니라 자본시장 참여자들에 대해서도 신용을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하며 은행이 기업에 대한 정보생산과 사후감시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선진국형의 시장중심 금융시스템으로 직접 전환하는 것보다는 시장하부구조를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시장금융시스템이 자생적으로 발달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야 한다. 투자은행, 신용평가기관, 외부감사기관 등과 같은 하드웨어 측면과 투자자 보호, 회계투명성, 공시제도와 같은 소프트웨어 측면의 하부구조의 개선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투자자 보호와 계약이행을 보장하는 법체계의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 더운 계절이 지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모두들 제자리로 돌아와 투자, 생산, 소비로 펑펑 선순환되어 흘러가는 돈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무더운 여름밤에 잠을 청해 본다.(매경, 2004.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