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대로 느낀대로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

송무학수 2007. 1. 16. 13:55

일전에 Murakami Haruki의 「어둠의 저편(Afterdark)」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여기에 매우 재미있고 의미 있는 우화하나가 소개되고 있다. 바로 ‘삼형제의 우화’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젊은 삼형제가 어느 날 고기잡이를 나갔는데 태풍을 만나 오랫동안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무인도의 해안에 닿게 되었다. 야자나무 같은 게 우거져 있고 갖가지 과일도 많이 열려 있는 아름다운 섬이었다. 그 섬의 한가운데에는 아주 높은 산이 솟아 있었다. 그날 밤 세 사람 꿈에 신이 나타나서 “여기서 조금만 가면 해안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세 개의 커다란 둥근 바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각 자 원하는 곳까지 그 바위를 굴려가도록 하고 멈춰 선 바로 그 곳이 각 자 살 곳이 될 것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세계를 멀리까지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 가는가 하는 것은 너희들의 자유에 맡긴다.” 고 말했다.


삼형제가 해안으로 가 봤더니 정말 커다란 바위 세 개가 있었다. 그들은 신이 말한 대로 비탈길 위로 큰 바위를 굴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주 크고 무거운 바위라서 굴리는 게 쉽지 않았고 비탈길 위로 큰 바위를 밀고 올라가야 해서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막내가 제일 먼저 더 이상 못 가겠다고 두 손을 들고 말았다. “형님들, 난 이쯤에서 그만두고 싶어. 여기쯤이면 바다도 가깝고 고기도 잡을 수 있으니까,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난 세상을 그리 멀리까지 보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어.“
막내는 뒤에 남고 두 형들은 바위를 더 위로 밀면서 올라갔다. 산중턱까지 갔을 때 둘째도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형, 나는 이쯤에서 그만둘래. 여기 같으면 과일도 풍성하게 열리고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멀리까지 세상을 바라볼 수 없어도 나는 괜찮아.”
맏형은 그 무거운 바위를 계속 밀어 올리며 언덕길 오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길은 점점 험난해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형은 원래 참을성이 많은 데다 세계를 조금이라도 더 멀리까지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있는 힘을 다해서 바위를 계속 밀고 올라갔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한 채 안간 힘을 쓴 끝에 마침내 그 바위를 높은 산꼭대기까지 밀고 올라 갈 수 있었다. 그는 거기서 멈추어 서서 세계를 바라보았다. 이제 그는 누구보다도 멀리까지 세계를 내려 다 볼 수 있었고 그 곳이 그가 살아갈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그 곳은 너무 높아서 풀도 나지 않고 새도 날지 않는 척박한 땅이었다. 물이라고는 얼음과 서리밖에 없었고 먹을 것이라곤 이끼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세계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게 해서 하와이의 그 섬 꼭대기에는 지금도 커다란 둥근 바위 하나가 외따로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우화는 우리에게 두 가지의 교훈을 말해 주고 있다. 하나는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하고 싶다면 (뭔가를 알고 싶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람들은 제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한 가지 방식으로만 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 우리 사회는 다양성이 점점 커져 가고 있다. 직업도 과거에 비해 매우 다양해져 가고 있다. 전통적인 공무원, 은행원, 교사이외에 생활상담사, 사회복지사, 웨딩디자이너, 미용사, 부동산 컨설턴트 등등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직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재택근무, 남편의 육아휴직 등 일상생활의 다양성도 점점 커져가고 있다. 이는 인류문명이 산업시대, 지식노동자시대를 거쳐 지혜의 시대로 가고 있는 흐름에서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획일적 사고와 외골수만을 고집하는 현상을 너무 자주 목격하게 된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 강남선호, 기러기아빠, 논문표절, 한의사선호 현상 등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수용하고 추구하는 노력이 부족하고 외골수만을 고집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물론 외골수를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은 사회 다양성의 일부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그것 아니면 안된다는 획일적 사고와 외골수만을 고집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일부 사람들이 교육환경이 좋다고 해서 자녀교육을 위해서 나도 반드시 강남에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듯이 일부 사람들이 자녀교육 때문에 기러기 아빠생활을 한다고 해서 나도 꼭 기러기 아빠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강남이 아니더라도, 기러기 아빠가 아니더라도 자녀들을 전인적 인간으로 양육해서 인생을 보람 있게 살 수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의미와 보람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여러 길과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삼형제의 우화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교훈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기가 원하는 바를 달성하려면 그 만큼의 노력과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인생을 한 가지 방식으로만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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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라나는 세대가 획일적 사고와 외골수만을 집착하는 경향에서 벗어나 인생의 다양성과 무한한 가능성을 수용하고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러한 교육시스템을 하루 빨리 정착시켜야 한다. 다양한 생각, 다양한 직업, 다양한 가치관, 그리고 다양한 생활, 그에 따르는 응당의 노력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그러한 다양성의 열린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