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낮은 금리는 또 다른 금융위기의 씨앗
미 연준은 최근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0~0.25%라는 사실상 제로금리를 선언하고 무제한적인 양적 완화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제로금리의 경험은 과거 일본에서도 있었다. 우리나라 중앙은행도 최근 몇 달 사이에 기준금리를 2%포인트 이상 인하하는 조치를 단행하였으며 정책금리 추가인하 가능성을 내비쳤다.
미국의 금융위기 사태는 따지고 보면 장기간의 저금리유지에 따른 과다 유동성으로 시작하여 주택시장 침체로 촉발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기인한다. 저금리로 촉발된 금융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다시 저금리로 대응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마치 술을 과음하여 생긴 문제를 다시 해장술로 무마하는 식의 소위 '해장술 싸이클'과 다르지 않다. 금융시스템과 규제감독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편하지 않고 또다시 금리를 과도하게 낮추어 대응하는 것은 또 다른 금융위기를 잉태하는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
일찍이 하이에크(Friedrich Hayek)는 시장이자율이 자연이자율 혹은 균형이자율보다 낮으면 기업가는 신용차입을 통해 투자를 늘리는 반면 가계는 소비를 늘리고 저축을 줄이기 때문에 저축과 투자에 불균형이 초래되고 필연적으로 금융위기가 발생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는 저축과 투자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고 다음기 활황의 시작이라고 했다.
금융위기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금리수준을 내리는 것은 불가피한 점이 없지 않으나 증장기적인 측면에서 성찰과 고민이 필요하다.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수준을 과도하게 끌어내리는 것은 다음기 금융위기의 씨앗을 뿌린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금리기능을 송두리째 파기한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이야 말로 금리수준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전반적인 경제의 신용경색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적인 장치를 설계하는 현명한 슬기와 지혜가 요청되는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위기의 한가운데 와 있는 현 시점에서 미국이 제로금리를 시행하고 엄청난 유동성을 과감하게 공급하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내일의 문제를 생각하기엔 상황이 너무 다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금리로 엄청나게 늘어난 유동성을 나중에 어떻게 환수할지가 앞으로 커다란 문제가 될 것이 뻔하다. 더욱이 미국이 제로금리를 시행했다고 해서 우리도 그에 추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우리와 미국의 상황은 분명하게 다르다는 점을 우리는 유념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제로금리를 시행하고 재정을 엄청나게 확장할 수 있는 것은 기축통화인 달러화의 특수성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헤아려야 한다. 미국 경제와 우리 경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세계경제에 차지하는 위치와 기본 전제가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될 것이다. 위기의 비용을 최소화하는 관점에서 단기적·대증적 대응도 중요하지만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중장기적 관점에서 자원배분의 효율성과 형평성, 그리고 이를 제고하기 위한 경제·금융시스템의 구조적 개혁을 추진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
금리정책은 기본적으로 거시경제안정을 위한 것이지만 금융안정을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일반물가가 낮은 수준에 있을 때에는 금리도 낮은 수준에 머물기 때문에 부동산 등 자산가격 버블과 같은 금융불균형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금융불균형을 그대로 방치하면 버블이 붕괴되거나 조정되는 과정에서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를 초래하게 된다. 금융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금리의 가격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금리가 가격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느 수준이상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금리를 지나치게 낮은 수준에 오래 머물게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금융안정을 해치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금융안정이 중앙은행의 중요한 책무로 전면에 부각되는 시기에 중앙은행은 과연 이러한 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충분한 수단을 보유하고 있는가? 금리수단만 가지고는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적어도 금융위기와 경기침체기에는 금리수준은 일정한 수준에 묶어 두고 신용경색 완화를 위한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한편 경기가 과열되어 유동성이 과다하게 팽창될 때에는 거시경제에 무차별적 영향을 미치는 금리수준은 그대로 두고서라도 유동성을 감축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나 제도적 장치를 설계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앞으로 통화정책 수단과 통화정책 운영방식, 그리고 통화정책의 파급메커니즘 전반에 걸친 재검토와 개편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