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의 각종 규제에도 불구하고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이어지자 금융당국은 대손충당금적립률 상향조정, 투기지역 6억원초과 아파트의 담보인정비율(LTV) 축소, 총부채상환비율(DTI) 40% 기준의 수도권 투기과열지구로의 확대, 대출액 1억원 초과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차주의 소득 증빙자료 징구 등 추가적인 대출억제조치를 취하였다. 이와 함께 은행 일선점포의 성과지표(KPI)를 현행 외형위주에서 수익성 및 건전성 중심으로 개편토록 지시했다. 금융감독당국의 이 같은 조치로 은행들은 잇따라 주택담보대출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심지어 주택매매관련자금이나 전세금반환자금 등 긴급자금외의 신규대출을 부분중단하는 초강수 조치까지 취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대출한도는 줄어들고 금리도 높아져 일반소비자들이 주택담보대출을 받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을 보면서 혹시 이러다가 또 다시 과거와 같은 신용경색이 재발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을 하는 이들이 많다. 우리는 이미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그리고 2000년 중반 이후 두번에 걸쳐 견디기 어려운 신용경색 현상을 경험한 바 있다. 과거 신용경색을 경험한 다른 나라들은 민간부문에 대한 과도한 신용증가로 자산가격이 상승하여 버블이 발생하고 이의 붕괴가 금융기관부실화로 이어지면서 발생했다. 우리의 경우는 기업 부채가 과다한 상태에서 현금흐름이 악화되자 많은 기업들이 부실화되고 기업의 자금공급원인 금융기관이 잇따라 부실화되면서 신용경색이 촉발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택담보대출 등을 통한 가계부채가 과다하게 누적되어 있는 상황에서 자산가격버블이 붕괴하거나 조정되는 과정에서 가계부문이 신용경색의 진원지가 될 위험성이 큰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신용경색은 일반적으로 신용의 공급측면, 특히 민간신용의 주요 공급원천인 은행대출시장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은행의 대출공급여력의 감소나 대출의지 위축 등에 따른 공급측면에서의 애로요인으로 인하여 信用可用性(credit availability) 또는 신용공급(규모)이 상당 기간 크게 둔화되거나 감소하고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는 상황을 지칭한다.
신용경색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금융시스템의 내재적 특성으로 인하여 경기국면에 따라 신용이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는 信用循環 過程(credit cycle)에서 경기침체와 함께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히 1980년대 이후에는 금융 자유화 및 개방화의 진전,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금융의 범세계화, 새로운 금융기법의 발전, 그리고 국제금융자본의 급격한 이동 등에 따라 금융자산이 대규모로 거래 및 축적되는 金融資産化 現象이 급속하게 진전되고 있다. 이러한 금융자산화의 진전은 한편으로는 주가나 부동산 등 자산가격의 급격한 상승을 통하여 소비나 투자지출을 과도하게 늘어나게 함으로써 버블경제를 유발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산가격 상승에 따른 누적적인 신용수요를 창출함으로써 기업을 비롯한 민간 경제주체의 과다한 부채누적을 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버블이 붕괴되는 과정(boom-bust cycle)에서 자산가격은 하락하는 반면 부채규모는 그대로 남기 때문에 기업의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유동성부족과 지급불능으로 기업의 부도위험이 높아지게 되고 개인도 파산가능성도 커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전반적인 경기침체와 함께 신용경색 현상이 불가피하게 나타난다. 이 같은 신용경색은 조기에 해소되지 못하면 자칫 금융중개기능을 마비시켜 기업과 개인 및 금융의 동반부실을 초래함으로써 경기침체와 금융시스템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은 1930년대 초반과 1990년대 초반에, 일본은 1980년대 후반에, 그리고 스웨덴은 1990년대 초반에, 그리고 멕시코와 말레이시아는 1990년대 후반에 주가나 부동산 등 자산가격 버블이 크게 확대되는 가운데 민간부채가 급격히 누적되는 과정을 겪었으며, 이에 이어 버블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심각한 경기침체와 함께 신용경색 현상을 경험한 바 있다.
우리나라 또한 1997년말 발생한 外換危機 이후 신용경색 현상을 경험하였으나 기업•금융구조조정 추진, 통화 및 재정의 확대, 자본시장 활성화조치 등 다양한 정책조치에 힘입어 신용경색이 해소되었다. 그러나 2000년 중반이후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이 아직도 미진한 가운데 일부 중견대기업의 자금사정이 악화되고 제2단계 금융구조조정을 앞두고 시장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신용경색 현상이 다시 나타났다.
신용경색은 가계부문에서 소비위축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기업과 금융의 동반부실을 초래함으로써 경기침체를 더욱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크게 제약함으로써 통화당국의 정책목표 달성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 더욱이 이러한 신용경색이 조기에 해소되지 못하는 경우 금융중개시스템의 붕괴를 통하여 금융위기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증폭효과를 통해 실물경기를 더욱 침체시키고 종국에는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크게 훼손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국의 과거 신용경색 현상의 발생 배경과 정책대응 경험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정책적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앞으로 우리 나라도 다른 시장경제 국가와 마찬가지로 경기국면에 따라 신용이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는 신용순환과정에서 신용이 지나치게 확대되다가 경기가 침체되면 신용경색현상이 반복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신용이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일관성 있는 거시정책을 통하여 안정적인 거시경제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과거 우리의 경우 기업부실화가 신용경색의 근원이었지만 지금은 가계부채 누적으로 새로운 신용경색의 진앙지는 가계부문일 가능성이 크므로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가계부채의 누적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러나 가계부채 해소를 위한 급작스럽고 일시에 충격을 주는 과격한 조치는 자칫 신용경색을 앞당길 위험성도 큰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일반적으로 자산가격버블이 과도하게 확대되다가 급격하게 붕괴되는 과정에서 신용경색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정책당국은 자산가격이 경제의 기초여건과 괴리되어 급격히 상승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 자산가격버블이 발생하여 과도하게 확대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금리, 환율, 주가, 부동산 등 자산가격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여 이를 가격변수의 급격한 변동성(volatility)은 가급적 완화하되, 기본적으로 시장을 반영하면서 신축적으로 움직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금리 변동성은 가급적 완화하되 기본적으로 경기상황과 시장수급상황에 맞게 신축적으로 움직이도록 함으로써 실질금리가 안정되도록 해야 한다. 명목금리를 장기간 낮은 수준에서 유지하거나 일방향으로만 조절하는 경우 자산가격벼블이 발생하거나 과도하게 확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셋째, 민간부채의 변화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부채의 과도한 누적을 억제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 자산가격이 상승하는 시기에는 가계부채를 비롯한 민간부채가 급속하게 늘어나는 경향이 있는데 민간부채가 금융자산의 규모나 소득에 비해 과도하게 누적되는 경우 버블이 붕괴되면서 자산가격이 급락하면 기업과 가계의 투자와 소비가 위축되어 경제가 장기침체로 빠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순자산가치 하락에 따른 대차대조표 악화효과로 유동성 부족과 지급불능사태에 직면하고 되고, 가계는 소비위축과 개인파산에 직면하게 된다. 한편 은행은 부실채권의 누적으로 인해 금융중개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신용경색과 경기침체가 악순환적으로 심화되는 가운데 금융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다.
넷째, 거시정책을 담당하는 통화당국과 미시정책을 담당하는 감독당국간의 긴밀한 정책협조가 필요하다. 신용경색기에는 통화당국이 신용경색 해소와 경기회복을 위해 통화완화정책을 시행하더라도 감독당국이 사전건전성 규제감독을 강화하게 되면 통화정책의 효과는 크게 제약되므로 통화당국과 감독당국간의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신용경색기에 통화정책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책파급경로의 원활한 작동이 전제되어야 하는 바, 파급경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금융기관의 금융중개행태 등에 관한 정보를 통화당국이 상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통화당국과 감독당국간에 자료와 정보의 교환은 물론 정책결정과정에서 협조와 조정이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금융기관들의 대출의지가 크게 약화된 상황에서 신용경색을 해소하는 데 중앙은행이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개별 금융기관의 자금운용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인체계에 기반을 둔 다양한 정책수단(incentive-based policy tools)을 보유하여야 할 것이다.
다섯째, 균형되고 안정적인 금융시스템을 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러한 금융시스템은 자산가격 버블 확대를 사전적으로 방지하는 제도적인 메커니즘을 제공할 뿐 만 아니라, 일단 신용경색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그 강도를 완화시키는 동시에 지속기간도 줄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은행부문이 중추적인 자금중개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자본시장이 기업자금의 주요 공급원으로서 은행과 긴밀한 보완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앞으로 은행부문을 강화하고 기업자금조달의 계층구조를 구축하는 한편, 기업의 代替的인 자금조달원으로서 자본시장을 육성해 나가는 방향으로 균형된 금융시스템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지나친 저금리정책은 기업의 차입비용과 유동성 리스크를 낮추어 차입자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하거나 자산가격의 상승을 초래하여 가계의 부채누적을 가져오고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연시킴으로써 오히려 신용경색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업구조조정을 촉진하고 가계부문의 부채누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명목금리를 지나치게 오랫동안 낮은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신용경색 해소를 위한 정책시행에 있어 첨언할 것은 정책당국이 가계•기업•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일관성 있는 정책을 시행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관성 없는 경제정책은 시장이 신뢰하지 않게 되며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성이 사라지면 그 어떤 정책도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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