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경제이야기

통화공급은 외생적인가, 내생적인가?

송무학수 2007. 1. 16. 17:27

통화의 外生性(exogeneity) 혹은 內生性(endogeneity)에 관한 논의, 즉 통화공급구조에 대한 논의는 통화경제학에서 아주 오래된 논쟁적 이슈의 하나이다. 이러한 통화공급구조에 관한 논의는 통화가 중앙은행과 같은 기관에 의해 외생적으로 공급되는 外生變數인가 아니면 민간은행의 신용규모에 따라 변동하는 內生變數인가 하는 것이다.

통화가 외생적이라고 보는 견해는 통화공급 변동이 물가와 실질생산을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통화의 내생성을 주장하는 견해는 통화공급은 실물경제 활동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본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통화주의론자는 화폐교환방정식(MV=Py)에서 통화의 유통속도가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전제하에 인과관계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즉, 통화(M)로 부터 명목소득(Py)으로 성립한다고 보아왔다.

그러나 최근 소위 후기케인지언학파와 일부 케인지언학파 경제학자들은 현재와 같은 신용화폐경제하에서는 이러한 통화주의 학파의 오래된 주장은 적정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현대경제사회에서 통화스톡은 대부분 은행을 비롯한 여러 금융중개기관의 예금부채로 구성되므로 통화는 불가피하게 이들 금융중개기관의 대출활동의 부산물로 창출되고 소멸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명목소득(Py)의 증가는 은행대출로 조달되고 은행대출의 증가는 통화공급의 증가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환방정식에서 인과관계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즉 명목소득(Py)에서 통화(M)로 흐른다는 것이다.

통화주의 경제학자 역시 예금통화 그 자체는 은행대출이 증가할 때 창출되는 내생변수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이러한 예금통화는 본원통화와 안정적인 관계를 가지는 통화승수 메커니즘을 통해서 중앙은행에 의해 충분히 관리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즉 예금통화의 창출은 본원통화의 이용가능량에 의해 제약을 받고 이 본원통화는 중앙은행이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기케인지언 경제학자는 본원통화 자체도 실제 중앙은행 제도상으로 보면 내생적인 것으로 본다. 이들은 중앙은행이 민간은행의 차입수요를 사실상 거절할 수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민간은행의 차입수요를 거절하는 것은 사실상 중앙은행이 은행시스템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최종대부자로서의 기능에 대한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수용조건 즉 재할인률을 변경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재할인율과 공개시장조작을 통한 단기이자율 조절이 중앙은행의 궁극적인 통화정책수단이 된다고 본다.

통화의 공급구조에 관한 논의에는 주의를 요하는 사항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물가수준(P), 실질생산(y), 그리고 통화량(M) 등의 변수는 모두 단일재화경제(one-good economy)를 상정하는 거시변수이다. 그러나 현실경제는 다양한 재화와 경제주체, 시장, 산업 등으로 이루어지는 다재화, 다부문경제(multi-goods, multi-sector economy)이다. 따라서 단일재화경제는 현실적으로 너무 강한 가정일 수 밖에 없다. 통화공급구조에 관한 논쟁적 이슈는 이러한 가정의 적정성에도 일부 기인한다. 둘째, 통화공급구조에 관한 논의는 통화정의의 선택문제와도 직결된다. 왜냐하면 통화가 금과 같은 상품화폐인가, 법정불환지폐인가, 아니면 예금통화를 포함한 광의의 유동성인가에 따라서 인과관계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통화의 외생성이 종종 정책에 의한 통제가능성으로 혼동되고 있다. 엄밀히 말해서 어떤 변수의 외생성은 그 변수가 정책에 의해 조절될 수 있다는 전제없이도 성립할 수 있다. 넷째, 동학적 측면에서 보면 내생변수로부터 외생변수로의 피드백을 인정하는 약외생성과 그러한 피드백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 강외생성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통화의 공급구조에 과한 논의는 상품경제, 법정불환지폐, 그리고 신용화폐 등의 화폐경제 형태와 은행과 금융제도의 발달정도에 크게 의존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논의가 통화의 외생성에 관한 논의인지, 아니면 통제가능성에 대한 논의인지, 그리고 통화스톡에 관한 논의인지 아니면 통화의 유통속도에 관란 논의인지도 불명확한 점이 있다.

어쨌든 신용경제가 크게 발달한 오늘날 통화의 내생성은 그 어느 때 보다도 강화되고 있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민간신용창조를 통한 통화의 내생적 공급구조로 인하여 민간부채비율이 크게 상승하게 됨으로써 금융의 구조적 불안정성이 크게 우려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외부통화와 내부통화의 구분을 통한 통화의 실물경제활동에 대한 효과에 관한 연구도 더욱 활발히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에 앞서 내부통화와 외부통화의 차이점, 즉 富 效果의 존재여부가 명확히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통화정책의 수행과 관련하여서는 통화의 공급구조가 통화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많이 좌우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즉 통화를 협의로 정의하면(예 본원통화, M1) 통화의 외생성이 성립할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이러한 통화의 외생성은 필요조건이지만 통화가 실물경제활동을 규정하는 충분조건은 아니다. 반면에 통화를 보다 광의로 정의하게 되면 통화의 내생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신용화폐경제하에서 이러한 통화공급구조의 내생성은 기존의 통화주의학파의 화폐수량설적 접근방법의 명백한 퇴조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완벽한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이상에서 언급한 과제와 함께 통화의 외생성 혹은 내생성에 관한 논의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향후 통화정책운용에 있어서는 후기케인지언학파가 주장하는 단기이자율 수단도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단기이자율을 운용목표로하고 인플레이션율을 최종목표로 하는 인플레이션 타겟팅과 통화량 타겟팅의 일부 요소를 함께 포괄하는 혼합형 통화정책전략(hybrid monetary policy strategy)에 기반을 두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의 두개의 중심축 접근방법(Two-Pillar Approach)과 같은 통화정책운용방식을 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