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본 금융감독체제 개편 방향
금융감독원의 저축은행 부실 감사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확인되면서 해묵은 논쟁거리였던 금융감독체제 개편론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우선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기능이 모호하게 뭉쳐진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체제를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감독과 정책 기능을 모두 갖는 금융위의 비대한 권한을 축소하고 금감원의 감독권한 일부를 한국은행 등으로 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최근 발생한 금융기관 부실감독은 기구개편 문제라기보다 ‘사람의 문제’ ‘제도운영의 문제’이기 때문에 내부 개혁과 감시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일부 제기됐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10일 “정상적인 상황에서 금융기관을 점검하는 기능을 가진 금감원이 위기 상황에도 감독권을 독점하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위기 대응 성격이 강한 기구인 예보와 자산관리공사(캠코)의 독립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위기를 관리해야 할 기구(예보 등)가 금융위 밑에 들어가서 지배를 받으면 오히려 감독당국의 부실을 은폐하는 역할을 맡게 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은행에 단독조사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이어지고 있다. 저축은행 사태에 금융당국의 조사독점권과 이에 따른 부실감사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는 예보, 시중은행에는 한은에 단독검사권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금감원도 별도의 검사를 진행해 교차 점검을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진국들이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의 검사 권한을 강조하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미국은 지난해 7월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감독권한을 확대했으며 현 우리 금융감독체제의 모델인 영국은 내년부터 금융감독원(FSA)을 폐지하고 건전성 감독 기능을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에 이관한다. 연준의 경우 위기 시 대형 금융회사에 대해 건전성 기준을 제정하고 자료를 직접 요구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우리 금융당국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빠르게 극복하자 감독강화 기능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금융위가 감독과 정책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감독 실무를 담당한 금감원이 권한은 부족하고 책임만 많이 지는 기형적인 체제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함정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위기의 교훈에 따라 당국이 금융감독을 철저히 해야 하는데 현재 금융위는 세력 확대에 유리한 정책 기능에 치우치는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정부가 금감원 수뇌부로 낙하산을 타고 오는 것 자체가 감독 강화에 배치된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감독체제 개편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감독을 철저히 하기 위한 내부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정대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외환위기 이후 감독체제 개편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나온 문제여서 뚜렷한 정답이 없다”고 말했다. 정 위원은 “저축은행의 위기를 사전에 감지하지 못하고 감독에 소홀한 것이 주요 문제이기 때문에 내부감사체계의 상시 작동 등을 우선시해야 한다”며 “조사권은 권력이기 때문에 이를 나눠준다 한들 권력기관이 많아지는 부작용도 예상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현정택 인하대 교수도 “지금의 감독체제를 가지고도 윤리 규정 등을 철저히 피드백하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현재까지 오랫동안 이어져 오고 있는 관행이라는 것이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