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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보여야 선진국 간다.

송무학수 2007. 1. 16. 13:41
15세기 초 중국 명나라는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해양원정대를 보내는 등 한때 유럽열강을 능가하는 국력을 자랑하였다. 당시 그들이 축조했던 배는 길이가 122미터로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호에 비해 무려 96미터나 더 큰 규모였다. 그러나 16세기 들어 중국은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 결국 제국주의 열강들의 각축장으로 전락하고 만다.

중국이 이렇게 몰락의 길을 가게 된 데에는 16세기 당시 정부의 역할이 크다. 농업만이 국부의 원천이며 상업은 비생산적이라는 전통적 인식과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집권세력을 위협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해상 무역을 통한 국력신장의 기회를 포기했던 것이다. 새로운 것을 거부하는 고루한 가치관과 잘못된 정책이 세계 최고 국력의 나라를 밑바닥까지 전락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는 어쩌면 지금 16세기 중국처럼 흥망성쇠의 기로에 서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30여년간의 고도성장을 통해 선진국과의 격차를 급속히 줄여 한때 경제성장의 모범국가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와서는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전혀 좁히지 못하고 선진국의 50~60% 수준에 계속 머무르고 있다. 이는 그 동안 선진국의 기술모방과 양적확대를 바탕으로 하는 성장전략이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많은 개발도상국이 선진국 진입 문턱에서 주저앉곤 했다. 경제학자들은 이같이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한 나라가 문턱에서 주저앉고 마는 안타까운 상황을 “기술정체의 함정”에 빠졌다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대부분 잘못된 성장전략 때문이다. 경제발전 초기단계에서는 선진국의 기술모방과 규모확대 위주의 투자전략이 유효했지만 경제가 어느 정도 발전한 단계에서는 새로운 성장전략, 즉 자체적 기술혁신 중심의 혁신주도 성장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성장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함정에 빠진 경우에는 기업들 스스로 전략을 전환하기 어렵다. 기업들은 꽉 짜여진 과거의 제도, 관행, 유인체계 때문에 예전에 해 오던 대로 경험에 의지하여 규모의 확대를 추구하는 것이 훨씬 손쉽고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사회전반이 변화하지 않을 때 자신만이 변화하는 것이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렇게 모두 변화를 두려워하는 생각을 갖게 되면 기술정체의 함정으로부터의 탈출은 불가능하게 된다.

이럴 때는 정부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 주어야 한다. 기업들이 혁신주도 전략으로 전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혁신이 이익이 되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관행과 의식을 바꾸도록 유도하고 기술모방과 규모 확대에만 집착하면 더 이상 이익이 되지 않도록 유인체계를 바꾸어 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이고 리더십이다.

정부의 새로운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우리의 흥망성쇠가 바로 정부의 새로운 리더십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 기로에서 우리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성장전략의 전환을 위한 정부의 새로운 리더십을 기대해 본다. (조선일보, 2003. 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