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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탁동시(茁啄同時)

송무학수 2007. 1. 16. 12:16

중소기업 금융지원을 위한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은 자금을 필요로 하는 기업과 자금을 공급하는 은행간에 존재하는 생각의 차이가 의외로 크다는 점이다. 은행측이 유망 중소기업 지원계획을 의욕적으로 설명해도 기업들은 실제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세계적인 기술력과 성장성을 갖추고 있는데도 은행이 담보 없이는 자금을 선뜻 지원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행은 은행대로 중소기업의 기술력은 인정하지만 수익성과 경영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신용만으로는 자금지원을 해줄 수 없다고 난색을 표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문제는 '情報가 非對稱的'이라는 데 있다. 신설 중소기업의 경우 자신은 기술력과 성장성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지만 정작 은행은 기업의 사정을 잘 모른다. 이에 대해 기업은 은행의 선진기술 및 사업성 평가능력이 크게 뒤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어쨌든 은행으로서는 앞으로 대기업의 은행의존도가 점차 낮아질 것이 예상되므로 중소기업 대출을 통한 수익성 확보가 불가피하다. 따라서 은행은 중소기업관련 정보를 꾸준히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망중소기업을 발굴하여 신용대출을 확대해 가는 關係的 貸出(relationship lending) 전략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략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기업평가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은행도 할 말이 많다. 기업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려면 은행에서 차입하거나 직접금융시장에서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해야 한다. 그러나 탁월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일부 IT기업을 제외하고는 창업단계 기업이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하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신설기업은 은행차입에 주로 의존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은행 입장에서는 신용위험이 높은 데다 기업 정보도 충분하지 않은 신설기업에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기는 매우 어렵다. 사정이 이런데도 기업이 자신의 기술력과 가능성만 내세우면서 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하면 은행은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원하는 자금을 제때 지원받지 못할 것은 뻔하다.

그러므로 중소기업은 자신의 기술력, 성장전략, 자금조달계획 및 마케팅전략 등 상세한 기업정보를 은행과 시장에 적극적으로 널리 알리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은행도 기업정보를 능동적으로 투명하게 제공하는 기업에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할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줄탁동시(茁啄同時)'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줄(茁)'이란 병아리가 바깥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안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의미하고, '탁(啄)'은 어미닭이 그 소리를 듣고 밖에서 마주 쪼아 껍질을 깨트려 준다는 뜻이라 한다. 즉 안팎이 동시에 맞아 떨어져야 세상사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간다는 의미이다. 기업의 성장도 마찬가지이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발돋움하고 다시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은행의 금융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은행의 지원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스스로를 능동적으로 투명하게 알리려는 기업의 노력도 중요하다. 중소기업의 적극적인 홍보노력과 유망 중소기업을 지원하려는 은행의 의지가 '茁啄同時'로 아우러질 때 비로소 건실한 중견기업으로의 발돋움이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빛일보, 2001.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