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오피니언

카이사르의 제국경영과 제도개혁

송무학수 2007. 1. 16. 13:18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이 유명한 문구는 지금으로부터 약 2,050년전 로마의 카이사르가 원로원에 보낸 승전보고서의 서두를 장식한 문구이다. 카이사르는 이외에도 숱한 명언과 "제왕절개수술"로 유명하지만 그가 로마사에 남긴 가장 큰 족적은 후임 아우구스투스 황제로부터 시작되는 "팍스로마나"의 초석을 놓았다는 점이다. 즉 카이사르는 광활한 제국이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제도를 정비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카이사르의 개혁이 순조로왔던 것만은 아니었다. 원로원 등 기득권층의 반발과 제정(帝政)으로의 이행에 두려움을 느낀 로마시민들의 거부감이라는 벽에 번번히 부딪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사르가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로마시민들의 의식을 바꾸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식민지인 속주민에게도 로마시민권을 부여하고 로마가도의 건설을 비롯한 각종 공공사업의 집행, 이자율 상한선 제정 등 민생을 풍족하게 하는 각종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제정으로 옮아가는데 따른 시민들의 의구심을 불식시킬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변하면 국가든 조직이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여 성공적으로 정착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제도와 법체계 등 하드웨어의 개혁과 동시에 의식, 규범, 제도운용 패러다임 같은 소프트웨어의 개혁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데는 적극적이었지만 이의 운용에 필수적인 소프트웨어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제도의 정착에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최근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의약분업도 제도 자체는 훌륭하지만 관계당사자나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이를 소화해 낼만큼 따라주지 못하기 때문에 삐걱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의식전환이 먼저냐 제도개혁이 먼저냐를 판가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제도개혁 없이 의식전환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제도가 허용하는 한 스스로 의식을 바꾸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제도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려면 먼저 제도를 바꾼 뒤 그것을 준수하지 않을 때 불이익이나 벌칙을 가함으로써 의식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카이사르의 개혁이 성공한 것도 새로운 제도가 시민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었을 뿐 아니라 이를 어길 경우 지위에 관계없이 가차없는 벌칙을 가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문에 부루투스로 대변되는 기득권층에게 암살을 당하기는 하였지만.

우리나라도 외환위기 이후 투명한 기업공시제도, 공신력 있는 신용평가기관, 다양한 민간 기관투자가 같은 시장중심 경제체제에 적합한 새로운 제도가 많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들이 아직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제도에 걸맞는 소프트웨어가 따라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새로운 제도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과 그것을 어겼을 때 엄격한 벌칙과 불이익이 가해진다는 점을 느끼게 함으로써 의식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

7월에 태어난 카이사르(Caesar, Gaius Julius)를 기념하기 위해 영어로 7월을 July라 한다고 한다. 카이사르가 태어난지 꼭 2,101년이 되는 7월 그가 다시 살아나 오늘 우리경제를 본다면 과연 어떤 말을 할 것인가 몹시 궁금해진다.(한빛일보, 2001.7.26)